DIARY

  • 2023년 회고

    몇 년 동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연말연시에 워낙 바쁘기도 하고, 단지 또 하루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한데 올해의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아무래도 한 해를 매듭짓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부터는 좀 다른 리듬으로 살고 싶고, 또 내 마음을 새롭게 다듬고 싶어서다. 2022년 하반기에…

  • 십년 후

    인간에게 절망하고 인간에게 희망을 본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로부터 절망하고, 또 별 수 없이 나로부터 희망을 갖는다. 나도 그저 그런 인간 중 하나니까. 4년 전 즈음, 나는 실망스럽고 역겨운 여러 일들 때문에 정말 절망하고 화가 났었다. 우울과 환멸감, 공황장애, 그리고 인간이 너무 싫어져서 성격도 진짜 시니컬해졌다. 그때 내 화를 삭여준 몇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쉼,…

    십년 후
  • 뉴스1의 어느 젊은 기자

    <뉴스1>의 모 젊은 기자가 경총과 삼성이 뿌려서 선배가 쓰라고 준 내용을 받아써서 쓰레기 기사를 썼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엉망인데다 당사자인 지회에는 취재 조차 하지 않고, 바지사장들과 경총의 말만 받아썼다. 정정보도와 공식사과 요구했고,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도 할 것이다. 기자로서의 양심과 사명감도 없나? 너무 화가 난다. 대학 때 가졌을 많은 고민들,…

  • 부활절 예배

    지난 일요일 부활절 예배를 ‘구경’ 간 적 있다. 그곳에서 지회장님의 기도를 듣고, 어느 감리교 목사의 기도를 들었다. 자본의 탐욕과 우리 모두의 죄의식을 질책하는, 그런, 기도였다. 격정적이기에 눈물이 나는, 그러나 죄의식에 대해 공히 확인하는 것이 가히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성동 가가린에서 일요일과 월요일마다 알바를…

  • 인사동

    일정 중에 시간이 떠서 오랜만에 인사동에 왔으나 이곳이 내가 알던 그 인사동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형세는 베이징 뒷골목 비스무리하고 인사동 고유의 간지는 거의 남지 않은것처럼 보인다. 중학생 때부터 종종 왔었는데, 갑자기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그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렸다. 이 도시의 골목들은 이렇게 망가지곤 한다. 시간성이 끊임없이 삭제되는 이런 도시에서 어떤 이념이나 사유체계, 운동들에게 ‘역사적’이니 뭐 이런…

  • 촬영일은 점점 가까워져오니

    이야기가 풀리지 않고 촬영일은 점점 가까워져오니 답답하고 조급해지고 내가 이렇게 빚 왕창 져서 만들 영화가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되지만 그럴때마다 도처에 만연한 저 죽음들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들, 절규, 분노, 모든 히스테리, 신경증적 발작, 미치광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쾡한 눈빛을 보려고 좀비시민처럼 거리를 헤맨다. 내가 정말 그것을 제대로 목격할…

  • 2012년 마지막 날

    예전엔 항상 이맘때 해를 맞이하면서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과 “새해 복 많이 쟁취해. 복이란 거져 생기는게 아니라 투쟁해서 쟁취하는 것이어야 진짜 복이니까”라고 오글거리는 운동권 덕담을 주고 받았는데 6년만에 다시 들으니 참 생경하다. 생각해보면 복이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시대에 제각각 싸워 쟁취하는 복일랑 승자독식의 복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묵주나 십자가를 앞에 두고 우리 아들…

  • 핸드폰 속 사진들로 돌아보는 2011년

    2011년 한 해동안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스쳐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작고 후진 스마트폰 하나로 기동적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새록새록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애시당초 스마트폰을 산 목적이 잘 달성된 듯 하다. 한미FTA 비준안이 아직 국회에서 비준되기 전, 거의 매일 같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갔었다. 그때 길바닥에서 본 ‘격문’이다. 어느 중년의 노동자가 휘갈겨 놓은 글로 보이는 이 격문은…

    핸드폰 속 사진들로 돌아보는 2011년
  • 사고와 불행

    불행이라는 괴물은 언제 어디서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어서, 쥐도새도 모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섬광처럼 닥쳐오고, 차창 밖에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쾌쾌하고, 타이어 불타오르는 냄새처럼 역겹고, 숨 가프고, 슬프고, 하이에나떼처럼 몰려오는 렉카 기사들처럼 경멸스럽고, 뼈저리게 후회하는 내 마음처럼 지리멸렬하며, 아프고, 뜨겁고. 저 피, 저 피… 파도치는 숨의 그래프, 응급실의 날카로운 긴장감, 보호자의 예리한 눈빛, 경찰관들의 무사안일한 마음, 나의…

    사고와 불행
  • 서점을 배회하기

    토요일 저녁 종각에서 고려대 동기 친구 MN을 만났다. 씩씩한 모습이 변치 않았다. 얼마후면 공장에 취직할거라고 했다.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또 우리는, 누구보다 그걸 잘 찾을 수 있었는데 나는 얌체처럼 떠나버렸고 MN은 이제 어엿한 사회운동으로의 진출을 예비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나는 딸기쉐이크를 혼자 먹고, 롯데리아에서 아주 잠깐 이야기를 하고, 곧 헤어졌다.…

    서점을 배회하기